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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_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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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문화재연구소 개소 이래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소는 전통문화의 계승 및 창달을 목표로 문화재에 대한 조사, 연구 및 보존업무를 수행하는 최고의 전문 연구기관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여 왔다. 그 결과 특히 고고학, 미술사학, 건축사학, 민속학, 보존과학 등 문화재 관련 제 분야가 상호 협력하여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연구기관으로 자리 잡아 가면서 부족하나마 문화재 분야에서 적지 않은 성과들을 거두어 왔다.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21세기를 맞이하여 우리소는 문화재 조사연구와 보존 분야의 첨단화·과학화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조사 연구 기법 개발 및 첨단시설 확보 등의 노력을 계속 경주하고자 하며, 활발한 국제교류를 통해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그 위상을 높이는데 앞장 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http://gsm.nricp.go.kr)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2년부터 전국에 산재한 금석문을 모아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1910년)까지 종합적으로 웹상에 구축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석문종합영상DB구축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금석문은 세월의 흐름과 환경적인 요인으로 마모되어 가는 실정이기에, 금석문의 탁본, 실물 등의 영상이미지와 판독과 번역의 텍스트를 수집하여 기록을 보존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또한 전문 연구가에게는 원문자료의 활용을 가능하게 하고, 일반인에게는 선조들의 기록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것으로, 2004년 5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http://gsm.nricp.go.kr)를 통해 웹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수록 범위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물론,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도비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한 금석의 내용과 더불어 다양한 금석문 관련 컨텐츠를 영상이미지로 구축하여 좀 더 쉽게 금석문을 이해할 수 있게 구성하였다. 특히 탁본의 고해상도 원본 사진을 거의 실제 크기와 유사하게 인터넷상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하여 탁본을 직접 보는 것과 같은 상태로 활용이 가능토록 하여 고품질의 문화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금석문이란
폭넓은 의미의 금석문이란 역사학의 기본 사료인 종이로 만든 서책(書冊)에 기록한 문헌자료와 문자 기록이 없는 고고학 발굴 자료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문자 기록을 지칭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청동 같은 금속성 재료에 기록한 금문(金文)과 비석처럼 석재에 기록한 석문(石文)을 합하여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석문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중국 길림성 집안시 우산하 고분군에 자리잡고 있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릉비, 신라의 진흥왕순수비, 죽은 이의 신원과 행적을 기록한 고려의 각종 묘지(墓誌), 조선 지방관들의 선정(善政)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 같이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에 걸쳐 많은 수량이 존재한다. 이와 더불어 백제왕이 왜왕에게 보낸 칠지도(七支刀)는 철검으로 몸체의 양면에 글자를 새기고 금(金)으로 상감한 유물로, 당시 일본과 백제의 외교관계의 단면을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고대 금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 광개토왕대의 의례용기 바닥에 호우(壺?)라는 명칭을 도드라지게 주조한 것, 불상 광배(光背)에 조성한 이유를 새겨 넣은 것 등도 대표적인 금문이다. 위와 같은 금문, 석문뿐 아니라 토기에 기록한 토기 명문(銘文), 잘 다듬은 나무 조각에 쓴 목간(木簡)의 기록, 직물에 쓴 포기(布記), 고분의 벽에 붓글씨로 기록한 묵서명(墨書銘), 칠기(漆器)에 기록한 묵서, 기와나 전돌의 명문(銘文) 등이 포괄적인 의미에서 역사의 이해를 풍부하게 해 주는 기록 유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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